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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이 바로서야 사회가 반듯해집니다 [박상도]

by 아띠할멈 2023. 8. 29.

호칭이 바로서야 사회가 반듯해집니다 

[박상도]






우리나라의 호칭은 정말 까다롭습니다.

이 호칭 문제는 홍길동전에도 등장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庶子) 길동이에게 대감마님이

“호부호형을 허(許)하노라.”라는 대목에서 

어린 시절의 필자는

‘그게 허락하고 말고 할 문제인가?

참 우습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호부호형'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홍길동의 아버지인 홍 판서가 길동이를 

예뻐해 호부호형을 허락한다 해도 

조선시대의 사회규범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소설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의식이 신분제의 부조리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호칭은 권력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필자가 방송을 시작한 1993년에는 

우리나라에 방송사가 KBS, MBC, SBS 세 곳만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디어 환경이었고

TV 출연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출연자는 PD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들끼리는 “김 PD” “박 PD”라고 부르면서

출연자들에게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으니

횡포가 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PD들이 출연자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송사가 흔하고 많아지면서 이름이 알려진 
출연자를 

모시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칭엔 관계를 규정하는 힘이 있어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상대를 하대하고 좀 더 극진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갑을 관계가 뒤바뀐 겁니다.

사실은 애초에 선생님이 아닌데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호칭에 ‘각하(閣下)’를 붙였습니다.


각하의 뜻과 기원을 알고 나면 굳이 

‘왜 대통령이라는 호칭 뒤에 각하를 붙여서 오히려 

격을 떨어뜨렸을까? 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각하는 중국에서는 고위 관료에게 쓰던 호칭이고

일본에서는 일왕이 임명하는 고위 관료에게

붙이는 칭호였습니다.

황제를 칭하는 ‘폐하(陛下)’나 

임금을 부르는 ‘전하(殿下)’를 대통령에게 붙이기에는

 부담이 되니까 ‘각하’라는 호칭을 억지로 가져다 

썼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속칭 ‘땡전뉴스’의 시작은 무조건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통령의 동정이 메인 뉴스의 처음에 등장해야만

하는 보도지침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뉴스가 시작되는 9시까지

대통령의 동정을 촬영한 영상이 도착하지 않아서

 대통령 동정이 두 번째 아이템으로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 여파로 관련 기자가 3개월 감봉 처분을 받고

청와대 출입을 못하게 되었다고 하니,

각하의 위세가 정말 대단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예기(禮記)에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는 말이

있듯이 과한 호칭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습니다.


각하의 이미지는 땡전 뉴스로 좋아지지 않았고,

이 땡전 뉴스는 결국 KBS 수신료 거부 운동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각하’라는 호칭은

제3공화국에서 제 5공화국까지 줄기차게 쓰였다가

문민정부에 들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각하’란

호칭을 없애겠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것이 공직사회에서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제대로 ‘각하’라는 호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이라는

호칭보다 이니셜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YS, DJ를 더 많이 사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각하’라는 

호칭이 설 자리를 잃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재임 시절 깍듯이 ‘각하’라고 불리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원의 판결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박탈당해 뉴스에서조차

“전두환 씨’로 불리다가 삶을 마감한 것을 보면

지도자는 호칭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경받을 수 있게 덕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의 경우를 걱정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 8월 1일 

공식적인 자리인 ‘인천 시민과의 대화’에서

“윤석열 밑에서 통치받는 게 창피했고 

문재인 대통령 때 금융감독원 부원장으로 임명받았는데 

윤석열 밑에서 임기를 마치는 게 엄청 치욕스러웠다.”

는 말을 했습니다.


이 발언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호칭과 관련한 부분만 짚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공식석상에서 

사적인 감정으로 공인으로서의 품위와 예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없는 자리에선 나랏님도 욕할 수 있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없는 자리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거대 야당 혁신위원장이면 국가의 지도층입니다.


자신의 말이 

공언(公言)이 되어 온 나라에 퍼질 것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빼고 이름만 부르면 결국

‘누워서 침 뱉기’라는 것을 왜 모를까요?


뉴스에서 앵커가 직함을 빼고

“노인 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은경이

대한 노인회를 찾아 사과했습니다.
대한노인회 회장은

김은경의 사진을 때리며 정신차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다 창피합니다.”


이렇게 읽으면 안 되는 거잖습니까?

높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스스로 예절을 버리면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물들게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 이유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태도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위이고 

투표를부정 하는 것입니다.


과거 권력을 

찬탈해 군부독재를 했던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며

대통령 직선제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는데,

이제 그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에 대해,

“윤석열 밑에서 통치받는 게 창피하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비록 내가 찍은 후보가 아니더라도

결과에 승복하는 게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시민이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과례(過禮)는 비례(非禮)이나 

무례(無禮) 또는 결례(缺禮)와는 다릅니다.


대통령 각하의 ‘각하’는 과례이지만 

대통령의 직함을 빼고 이름만 부르는 것은 

무례이거나 최소한 결례입니다.


명백한 잘못인데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건 

우리 사회가 이러한 무례에 많이 익숙해진 

탓인 것 같습니다.


기자를 기레기, 기더기라 부르며 조롱하고,

국회의원을 국개의원이라고 부르고

경찰을 짭새라 부르며 비하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속이 얼마나 후련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의 품격은 그에 비례해서 추락했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매섭게 조목조목 잘못을 질타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데 호칭으로 분풀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든 기자들이 기더기처럼 기사를 쓰고

모든 국회의원들이 개처럼 행동하고 

모든 경찰이 새가 되어 날아다닐 때까지 

이런 호칭을 쓰려는 건지요?


얼마나 더 서로를 

조롱하고 비하하고 부정해야 직성이 풀릴까요?


“당신들이 잘하면 그때 제대로 불러줄게.”

라고 말할 거라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전화 상담원에게 폭언, 폭력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언어 폭력에 해당하는

호칭과 무례한 호칭을 쓰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대통령이라 부르고 기자를 기자라 부르고

경찰을 경찰이라고 부르는 것이

'호부호형'을 허락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까요?


호칭이 바로서야 사회가 반듯해집니다.









받은글(태초로님) 편집입니다!

2023.8.18.아띠할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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